Processed with VSCO with c5 preset Processed with stamp

미스터트롯 김호중은 노래를 노래하는 사람 -김호중 개념어 사전

미스터트롯 김호중은 노래를 노래하는 사람

-김호중 개념어 사전

어휘는 각각의 분명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뜻을 모르면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고, 말을 해도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단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어야 서로 표현하고 알아듣는 일이 가능해진다.

김호중이 어떤 사람인지 또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려고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김호중이 사용하는 어휘를 알아야 하고, 나아가 김호중이라는 사람이 그 어휘를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김호중과 원활하게 소통이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을 향유하는 감상의 폭과 진가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김호중을 알아가는 차원에서 김호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이해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학습해야 할 단어의 개념은 명사 ‘노래’와 동사 ‘노래하다’이다. 물론 형용사 ‘노래하는’이 있긴 하지만 ‘김호중이 노래한다’와 같은 문장의 앞뒤를 바꾸면 ‘노래하는 김호중’이 되기 때문에, 즉 동사가 주어 앞으로 가면 형용사가 되고 형용사가 문장 끝에서 서술어가 되면 동사가 되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명사 ‘노래’와 동사 ‘노래하다’를 구분하면서 그 각각의 필요성을 절대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명사 ‘노래’와 동사 ‘노래하다’가 서로 다른 차원의 영역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즉 ‘노래’는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서 악보로 남겨놓은 것이고, ‘노래하다’는 그 ‘노래’를 어떤 사람이 부르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명사 ‘노래’를 김호중은 어떻게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을까. 김호중이 사용하는 ‘노래’라는 개념은 말 그대로 ‘노래’라는 의미다. 사람이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래, 현재 사람이 부르고 있는 노래다. 이것이 김호중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노래에는 장르를 일컫는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시간을 일컫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간을 일컫는 외국에서 한국까지, 사람을 일컫는 아이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 각각의 형태가 매우 많고 다양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과 사회가 그러하니 노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김호중이 말하는 ‘노래’의 개념은 이 모든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다 노래이기 때문이다.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래 저런 노래’라는 형식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이쪽 노래 저쪽 노래’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면서 노래 앞에 특정 타이틀을 붙이게 되고, 노래의 성격을 한정적으로 부여하게 된다.

김호중의 노래 개념은 위에서 말하는 형식과 성격을 뛰어넘는다. 그 모든 것을 다 포괄한다. 노래라는 말로 다 포함하고 흡수한다. 김호중의 마음에는 다 노래만 있을 뿐이지 그 노래와 노래 사이에 장벽은 없다. 있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선행적으로 학습한 노래의 외적 형태와 공간적 구분 앞에서 오로지 그들과 소통을 위해서 그렇게 할 뿐이다.

김호중이 노래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노래하다’의 개념은 어떤 것일까. 이 역시 명사 ‘노래’와 마찬가지로 말 그대로 ‘노래하는’ 의미로써 ‘노래하다’이다. 어떻게 부르느냐와 관계없이 노래하면 되는 것이고, 영역 구분에 따른 표현의 제한성을 뛰어넘어 노래하겠다는 의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피력한 것이다.

‘노래하는’ 행위도 ‘노래’만큼이나 그 성격과 영역이 다양하다. 쉽게 말하면,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는 성악 발성과 대중음악에 기반한 대중가요 발성이 있다. 그 안에서도 이러 저러한 발성과 그에 따른 가창법과 기교가 달라서, 발라드와 트로의 발성과 기교가 다른 것처럼 그렇게 자기만의 영역으로 발전하면서 정착되어 왔다.

그 각각의 영역에서 추구하고 이뤄가야 하는 음성이나 음색을 말할 때 ‘소리’가 있고 ‘발성’이 있고 ‘창법’ 등등이 있다. 이런 경우 어느 영역에서 그 분야의 특정 방법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실력과 위치를 견고하게 구축해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영역을 넘나드는 형태가 발생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크로스 오버다.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 대중음악을 하는 것이다. 성악을 하는 사람이 팝이나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크로스 오버 음악은 제한적 입장의 크로스 오버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크로스 오버라고 할 수가 없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두 가지로 설명할 수가 있다.

첫째는, 언제나 한 방향에서 다른 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성악을 예로 들면 언제나 성악하는 사람이 대중음악을 하게 되지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성악을 하게 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는,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지라도 잠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경로로써 넘어가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넘어가서 오래 머물러 있거나, 그 분야에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와는 반대로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넘어가서 자리를 잡은 경우, 출발 이전의 환경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는 것과 새로 잡은 방향에서 이전의 방향으로 다시 넘어가지 못하는 상태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살펴보면 김호중은 지금까지의 선례와는 다른 케이스가 될 공산이 크다. 최초로 양방향에서 활동하며 ‘노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통합적인 성격과 방식으로 노래와 영역을 택하고, 융합적인 자세와 기교로 양방향성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제 출발이며 진행형이므로, 앞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단단한 기초를 견고하게 쌓았다는 의미를 전제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김호중의 진가와 그의 음악 세계에 환호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함께 전제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김호중을 이야기할 때, ‘노래하는’ 김호중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 김호중 앞에는 노래의 제한이 없고 활동 영역이나 공간의 제한이 없으며, 가창의 방법이나 형식의 제한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로지 김호중 앞에는 노래만 있을 뿐이고 노래하는 행위만 있을 뿐이다.

장르와 공간을 넘나드는 노래로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노래하는 것.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을까. 다른 공간과 영역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영역의 확장을 보여주며 이끌어가는 것. 그 이상 바랄 것이 있을까.

김호중은 모든 노래를 노래한다. 여기서 ‘모든’을 빼자. 김호중은 노래를 노래한다. 여기서 또 ‘노래를’을 빼자. 김호중은 노래한다. 어순을 바꾸면 ‘노래하는 김호중’이다. 이제 되었다.

#김호중 #미스터트롯 #미스터트롯김호중 #김호중고맙소 #미스터트롯고맙소 #노래하는사람 #김호중노래하는사람

Share thi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