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김호중이 부른 짝사랑의 위치와 가치
인지언어학을 창시한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펴낸 책 중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언어학을 현실 정치에 적용한 화제의 베스트셀러였는데요. 이 책은 정치를 대상으로 다뤘으나 인간의 존재와 사회라는 관점에서 정치는 물론 인간의 모든 영역에 그 틀을 사용할 만한 유익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중요한 한 대목에 ‘상대가 만든 링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상대가 만든 링 위에 올라가면 승리하는 경우보다 패배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편안하고 익숙한 링이지만 자신은 아주 낯선 링이자 불안한 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가 싸우자고 하면서 링으로 올라오라고 할 때, 바로 그 링으로 올라가게 되면 이미 상대의 그물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길 승산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최소한, 패배함으로써 다음 승리의 바탕을 위한 주춧돌을 놓는다는 계산을 위해서라도 상대가 만든 링에는 정확하고 뚜렷한 판단이 선 뒤에 올라가야 합니다.
미스터트롯에 참가하고 있는 김호중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호중은 상대가 만든 링 위에 이미 올라가 있고, 그 링 위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시청자들을 울고 웃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호중이 뛰어든 링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는 사실로 인해 김호중이라는 자산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김호중이 뛰어든 첫 번째 링은 대중가요에 속해 있는 토로트입니다. 트로트 오디션이라는 거대한 링이 만들어졌고, 그 링 위에서 강자의 면모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트로트 무대라는 링 위에 올라간 김호중의 자세가 능동적이냐 피동적이냐는 판단입니다.
여기서 보여지는 김호중의 등장은 상대에 의해 피동적으로 올라갔다기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올라갔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왜냐하면 미스터트롯은 기본적으로 트로트라는 노래와 무대를 겨냥해서 기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로트라는 영역 밖에 있는 있는 김호중이 등장한 링은 그래서 상대의 링이나 프레임에 말린 것이 아닌, 전적 자발성에 따라 자기만의 링을 만들기 위한 등장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김호중이 뛰어든 두 번째 링은 방송입니다. 방송이라는 링은 무엇일까요. 방송에 적합하고 또 방송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그 가치가 방송을 위해 절대적인 힘을 동반하고 있어야 하며 유효기간도 오래가면 갈수록 좋은 그런 링이겠지요. 그 링의 싸움을 구경한 시청자들까지 방송의 휘하에 거느릴 수 있으면 금상첨화와도 같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런 링 말입니다.
김호중의 경우를 역설적으로 살펴볼 때 김호중이 이미 가지고 있는 링의 무기는 클래식이자 성악입니다. 그것을 드러내는 무대도 콘서트나 공연장 같은 성격이어서 방송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역시도 첫 번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불러서 올라간 링이 아니라 그 링에서 한번 싸워볼만 하기에, 그 링의 승패와 관계없이 존재감을 확신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산이 있다는 계산 아래 방송이라는 링으로 올라간 것으로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미스터트롯에 참가하고 있는 것 자체가 김호중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절대적 자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만일 김호중이 방송이라는 링에, 그것도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과 확장성을 가진 방송의 링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의 방송이라는 상대가 만든 링에 올라가서 얻고 누릴 영광들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이쯤에서 보면 승패나 등수는 김호중에게 상관없어 보입니다. 김호중이 올라간 링은 비록 상대가 승리자와 우승자를 선택하여 관중들 앞에 내세우려 했던 링이었으나, 김호중은 그 링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에 의한 그리고 자신을 위한 링으로 만들어가면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재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호중이 부른 주현미의 짝사랑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무대 당시의 링이자 현재의 링만 본다면 김호중은 전가의 보도와 같은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했어야 합니다. 또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대회나 무기라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입니다.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변별력이 극대화되는 선택, 그리고 그것을 일관되게 끌고 나가는 힘입니다.
미스터트롯에 참가하고 있는 김호중의 경우를 보면 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컨셉트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김호중은 트로트와 성악과 크로스 오버를 다 보여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여자 가수가 부른 노래까지 원키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노래하는 발성과 창법까지 다양했습니다. 아니, 다채로웠습니다. 그것의 정점이 바로 주현미의 짝사랑이었습니다.
김호중이 부른 짝사랑은 철저하게 현재보다는 미래를 위한 노래였고, 자신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한 노래였고, 이후 활동을 위해 복선의 장치를 설정하는 기능적인 노래였습다. 당장의 승부가 아닌 멀리 내다본 승부, 아니 승부보다는 빅픽처를 확실하게 꿈꾸고 있는 자로서 자기 세계의 확장과 안착을 위한 무대의 결정적 순간에 하나의 소중한 장치를 해 놓은 것입니다.
김호중의 재능은 카멜레온의 동물적 감각을 닮았으며, 팔색조의 산뜻한 컬러감과 분위기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호중에게 본능과도 같은 것입니다. 김호중은 지금 미스터트롯이라는 무대에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영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묵직하게 또는 가뿐하게 날아다니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날고 있습니다.
상대가 만든 링 위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자, 어퍼컷을 치며 달려드는 그 링 안에서 노련한 스탭과 순발력 있는 잽과 펀치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끝까지 자기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자, 그가 바로 김호중입니다. 김호중에게는 완주가 자체가 의미 있는 승리가 될 것입니다.